내가 살고 있는 분당에서 학교가 있는 한남동까지 오는 길은 멀고도 가까운 길이다. '멀고도 가깝다'라는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 분당에서 한남동까지의 물리적인 거리는 멀지만 분당에서는 경부고속도로를 경유해 바로 학교앞까지 오는 광역버스가 많이 다니기 때문이다. 막히지 않는 고속도로에서는 시속 120km까지 아낌없이 밟는 버스 덕분에, 광역버스를 탄 뒤 빠르면 15분만에 학교앞에 도착할 수도 있다. 지하철을 타면 아무리 빨라도 1시간 20분은 걸리는 거리인데 말이다.
오늘 등교길도 별다를 것이 없었다. 언제나처럼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눈에 익은 빨간색 버스가 시야에 들어오자 얼른 탈 준비를 했다. 정류장에 가까이 오는 버스. 슬쩍 안을 들여다 보니 서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오늘은 빈자리에 앉아갈 수 있겠군.'
버스는 정차했고, 나는 그 버스에 올라탔다. 익숙한 동작으로 교통 카드를 찍은 뒤 빈자리를 찾기위해 고개를 돌렸다. 버스 앞쪽 자리에 앉아있는 무표정한 얼굴들. '밖에서 보기완 달리 속은 꽉 차있네-' 라고 생각하며 한자리 한자리씩 뒤쪽으로 시선을 옮기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그와 눈이 마주친 것은.
그는 버스 중간의 내리는 문 앞에서 손잡이를 잡은 채 서 있었다. 평소라면 '아 사람이 서있는 걸 보니 결국 자리는 없는건가-'하고 무심히 고개를 돌렸을텐데, 나는 한참 동안이나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큰 키에 밝은 갈색머리, 약간 하얀빛을 띠는 피부, 그리고 옅은 파란색의 눈동자.
그는 바로 외국인이었던 것이다.
광역버스안에서 외국인 승객을 만난 것은 정말 오래간만의 일이라 약간 놀랍기도 했고, 어떠한 의미에서는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 사실 광역버스에서 아무 일 없이 서서 가기란 의외로 고달픈 일이기 때문이다. 그의 바로 옆에 자리를 잡은 나는 천천히 그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물론, 티나지 않게.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의 체형이다. 유감스럽게도 날씬하다거나 근육질의 탄탄한 몸매는 아니었다. 약간 살이 찐 몸매. 그렇다고 엄청나게 뚱뚱하지도 않았고, 통통하다와 뚱뚱하다의 중간 정도의 느낌이 드는 그런 몸매였다. 적당히 나온 뱃살과 통통한 볼살, 두툼한 허벅지가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느낌을 갖게 했다. 일단 호감을 가지게 된 셈이다.
그 다음은 얼굴이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갈색 머리, 아까 말한 것처럼 옅은 파란색을 띈 눈동자를 가진 그의 눈매는 선한 빛을 띄고 있었다. 적당히 솟아오른 코, 그리고 코밑에서부터 턱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약간 통통한 볼살에 귀앞쪽으로 내려와있는 구렛나룻까지. 전체적으로 볼때 못생겼다곤 할 수 없는 얼굴이다. 아니, 살만 뺀다면 충분히 미남형이라고 할만 하다.
그의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문득 누군가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흐음-. 머릿속을 한참 뒤진 끝에 그 사람이 누군지 기억해낼 수 있었다. 영국출신의 헐리우드 배우, 이완 맥그리거. 물론 객관적으로 봤을때 그는 이완에 비하면 한참 못미치는 외모임에는 분명했지만 얼굴 전체의 느낌, 특히 눈매가 주는 느낌이 어딘지 그와 상당히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아쉽게도 내가 이완 맥그리거의 외모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생각하는 이마의 뾰루지(?)는 그에게 없었지만.
어쨋거나 나는 마음속으로 그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통통한 맥그리거씨.' 바로 그 순간 다시 한번 그와 눈이 마주쳤다. 약간 당황한 나는 얼른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리며 시선을 외면했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내 눈길은 다시 그에게 향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쓰고 '자, 이제 발표해볼까요?' 이란 교수님의 말 한마디에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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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9일, 지금 듣고 있는 '애니메이션 제작의 기초' 과목 수업 도중에
'오늘 학교 오는 길에 만난 대상(사람/물체/생물/무생물)에 대해
- 대상(캐릭터)의 묘사에 중점을 두고'란 주제로 슥슥 적어본 것입니다.
(지금은 쉬는 시간이네요.;)
음, 참고로 말씀드리면 픽션이 아닙니다. 논픽션- 그것도 정말 오늘 일어난 일에 약간의 과장과 상상을 덧붙여서 적은 것.; 그래서 3분 설정에도 불구하고 왠일로 속도를 팍팍 붙여서 쓸 수 있었네요.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군요.
언젠가 뒤편을... (쓸까 말까)
Posted by 달크로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