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 슈이치 - 첫사랑 온천

요시다 슈이치 - 첫사랑 온천

 '퍼레이드' 이후 요시다 슈이치의 책은 발매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구입했고, 항상 구입한 그날 다 읽어버렸다. 다른 어떤 환경에도 방해받지 않고 책에만 집중을 해서 하루에 읽어버리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에 대한 예의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최근작 중에 하나인 '나가사키'는 아직도 읽지 않고 있고. '첫사랑 온천'은 구입한지 한달이 넘도록 읽지 않고 있었다. '거짓말과 거짓말'과 '캐러멜 팝콘'에서 조금 실망한 때문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어쩌면 단지 그의 글에 좀 질렸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쨋거나 책을 많이 읽으리라 결심한 이번주. 결국 그의 책을 다시 손에 잡았다.


 요시다 슈이치를 읽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쓸쓸함'이다. '열대어'에 실려있는 저자 인터뷰의 내용처럼 우리가 바쁘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이토록 괴로워 하는 것은 마음속에 '쓸쓸함의 원형' 같은 것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겉으로는 멀쩡하게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외로움에 어느 순간 무너지기도 하고, 일탈을 꿈꾸기도 하는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의 모습은 어찌보면 현대의 도시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책을 읽다보면 그 쓸쓸함에 가끔은 가슴이 답답하다.
 하지만 요시다 슈이치의 책이 가슴이 답답해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설득력 있는 일상의 묘사-이건 정말 이 작가 최고의 무기다-에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하고, 작가 특유의 위트 덕분에 읽으면서 킥킥 웃으면서 읽은 적도 많다. 내가 '퍼레이드'에 빠져들게 되었던 것도 '파크 라이프'에서 마음을 굳히게 된 것도 그 덕분인 듯 싶으니.


 '첫사랑 온천'은 내가 좋아하는 요시다 슈이치의 이런 측면이 매우 강하게 발휘된 작품이다. 가슴 속 쓸쓸함과는 약간 거리를 두고, 사랑의 한장면을 온천이라는 특수한 풍경속에 묘사해냈다. 일본 전국의 다섯개의 온천을 배경으로 한 다섯가지 짧은 이야기를 모은 구성으로, 다섯개의 단편들 중 어느 것은 제법 쓸쓸하기도 하고, 어느 것은 꽤나 경쾌하며, 낯뜨겁게 간지럽기도 하지만, 주인공도 배경도 다른 모든 이야기들을 모아보면 결국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된다. 누구에게나 적용 시켜볼 수 있는 '남녀의 사랑이야기'. 이러한 점에서 이 소설은 '7월 24일 거리'와 같은 요시다 슈이치식 연애소설이라고 할 만하다. (두 연애소설의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면, '7월 24일 거리'에서의 화자는 여자이고, '첫사랑 온천'은 3인칭이기는 하지만 이야기의 시점이 실질적으로 남자에게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첫번째 이야기 '첫사랑 온천'은 겉으로는 전혀 문제없이 남부럽지 않게 살고있지만 실제로는 행복하지 않은 부부의 이야기다.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추구하려다 그 행복을 잃어버린 주인공의 이야기는 흔하면서도 여전히 흥미로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맨처음이어서 그런지 이부분을 읽을 때까지는 아직 조금 심드렁했던 것도 사실이다. 배경이 되는 온천의 비중이 다섯 이야기 중에 가장 낮다.

 두번째 이야기인 '흰 눈 온천'은 여기 실린 이야기 중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이야기다. 수다스러우면서도 공감이 가는 두 사람의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도 공감이 갔고, 첫장면에서 등장하는 모든 소리가 사라진 듯한 설국의 모티브를 끝까지 잘 살려냈다. 아마 따로 단편으로 발표해도 괜찮을만 하다고 생각이 될 정도로 좋았다. 요시다 슈이치 답지않게 살가운 부분도 있었고.

 새번째 '망설임의 온천'까지 읽자 맨처음에 '첫사랑 온천'을 배치한 것은 의도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책 마지막의 역자 후기에도 '역순배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자신의 뜻대로 살아보지 못한 약한 남자. 아내에게도 새 애인에게도 미안해하면서도 결국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못한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바람이 불어오는 온천'은 가장 요시다 슈이치 다운 단편이다. 강한 척 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뿌리채 흔들리고 있는 남자 주인공부터, 여행에서의 우연한 만남. 그리고 '퍼레이드'의 반전을 떠올리게 만드는 마지막 부분까지도. 숲속에 위치한 온천의 풍경이 정말 놀랍도록 자세히 묘사되어있다.

 마지막 이야기 '순정 온천'은 요시다 슈이치가 이런쪽으로도 재능이 있었던가 하고 놀랐을 정도로 10대들의 연애담을 정말 아기자기하게 잘 꾸려서 표현하고 있다. 제목처럼 정말 주인공들의 사랑은 '순정'이다. 그 순간만큼은 영원히 지속될 수 있을 것만 같은…….



 이 소설에서 '온천'은 일상적으로 마주할 수 있는 풍경과는 다른, 조금 특별한 장소이다. 이 작품에서 기존의 작품과는 사뭇 다른 '살가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유는 아무래도 그동안 다루지 않았던 비일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바람이 불어오는 나스의 온천에서 주인공 쿄스케가 절실히 느낀 것처럼, 특별한 장소로 떠난다고 해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장소가 아무리 특별하더라도 그 장소에 있는 '나'는 결국 일상적인 풍경 속의 나와 같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결국 이 소설도 그 느낌이나 분위기는 조금 다를지언정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임은 근본적으로 다를 바 없다. 우리가 하루하루 새로운 '일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ps. 책을 읽는 내내 작가의 '온천'에 대한 애정이 전해져왔다. 요즘 온천은 고사하고 따뜻한 탕속에 몸을 담궈 본 것도 정말 까마득히 오래되었는데….

 돌아오는 길에 역 앞 편의점으로 고기만두를 사러 가다가 쓰지노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이야, 조연 부부라는 거 좀 심하지 않나?"
 저녁 식사 때는 농담으로 받아들였는데 그 말이 서서히 가슴에 와 박혔던 모양이다.

 "정말 그렇지. 도대체 조연 부부가 뭐야?"
 "내가 그렇게 잘 떠드나?"

 쓰지노가 눈치를 보며 묻자, 와카나도 사뭇 진지하게 대답했다.
 "뭐, 말이 없는 타입은 아니지."

 "그런가?"
 "그래. 맞아, 야나기사와와 비교하면 말이야……."
 "야, 그 녀석은 나와 정반대잖아. 그런 녀석과 비교하는 건 심하다."

 "하지만 보통 그쪽을 더 남자답다고 생각하잖아?"
 "그런 녀석이 표준이면 이 세상이 너무 조용하게. 네가 야나기사와를 예로 들었으니까 난 그 녀석 여자 친구와 너를 비교해 볼까?"
 "그건 반칙이야. 그 여자는 좀 지나치게 얌전한 스타일이라고."

 "그렇지. 그 커플은 너무 조용하지? 그렇게 같이 있으면 재미있을까?"
 "잘돼 가는 거 보니까 재미있나 봐."
 "그렇게 서로 잠자코 있는데?"
 "둘이서만 있을 때는 말하겠지."

 "우리처럼?"
 "뭐, 그렇게까지 떠들지는 모르겠지만……."

 이 대목에서 둘은 마주 봤다. 아마 같은 생각이 떠올랐는데 그걸 말해야 하나, 하는 망설임이 와카나의 얼굴에 드러났다.

 "……그럼, 우리가 조연 커플이면 걔들이 주연 커플?"

 먼저 입을 연 것은 쓰지노였지만 와카나도 솔직히 그냥 인정한다.
 "일반적으로는 그렇겠지."
 "아무래도 이해할 순 없지만……, 그렇지."

 "뭐, 상관없잖아?"
 "뭐가 상관없어. 너는 포기가 너무 빨라."

 "그래? 그래도 말이야, 우리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기에는 너무 예민하지 않아? 있잖아, 기본적으로 주인공들은 둔감한 사람들이잖아."

 "그런가?"

 "그럼. 둔감하니까 사건에 휘말리지. 또 불륜을 저지르거나 당하거나 하고. 그러니까 우리처럼 예민한 사람들이 옆에서 사정을 얘기해 줘야 하는 거라고."

 자신만만한 설명에, 쓰지노는 엉겁결에 "정말 그렇군."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 「흰 눈 온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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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크로즈

2007/06/21 18:12 2007/06/21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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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차별 연쇄살인.

오늘 오전 뉴스 속보를 보면서, 2주전에 부녀자 연쇄 피습 사건을 다룬 '그것이 알고싶다-되살아난 연쇄살인의 공포'에서 들었던 '동기 없는 무차별적 범죄'가 생각났다.
그리고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 '퍼레이드'의 마지막 장면도.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 될 수 있었던 희생자분들을 생각하면 역시 한숨부터 나오게 되지만..

언제부턴가 조금씩 늘고 있는 이런 '선진국형 범죄유형'의 소식을 들을 때면 여러가지 생각이 떠오르곤 한다.

한루님의 글에서처럼 연쇄살인범의 살인 동기라는 것은 어쩌면 일반적인 사회의 잣대로는 이해할 수 없는 그런 것일런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혹시나 그 원인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범죄심리학은 커녕 심리학 자체에 문외한인 내가 이런 일들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말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요시다 슈이치가 썼던 표현처럼 '내 경우'를 생각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내가 만일 범죄, 그것도 무차별적 연쇄살인을 저지른다면 무엇 때문일까.

오늘밤 잠들기 전에라도, 한번쯤 생각해봐야겠다.


"가끔 잠들기 전에, 내가 만일 범죄를 저지른다면 무엇 때문일까 멍하니 생각한다. 내 경우 아마도 돈 때문은 아닐 것이고, 증오 때문도 아닐 것이다. 그 정도는 억제할 수 있다. 그렇지만, 너무 쓸쓸해서 못 견디겠으면 어떨까. 자기도 모르게 일을 저질러버리게 되지 않을까? 요즘 일어나는 사건을 봐도 배경에 쓸쓸함이 내비칠 때가 있어서 왠지 공감이 간다."
- 요시다 슈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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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크로즈

2004/07/19 00:52 2004/07/19 00:52

요시다 슈이치 - 열대어



요시다 슈이치의 열대어(원제는 열목어;).


요시다 슈이치.
'퍼레이드' 로 팬이 되버린 후..
다음에 열대어가 나온다는 이야길 접하고
전부터 벼르고 벼르던 차에, 드디어 구입!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어나갔는데도 이틀여만에 다 읽어버렸네요.


이 요시다 슈이치란 작가의 강점은, 바로 '묘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열대어'에서 보여주는 색색의 대비..
'파크 라이프'에서의 히비야 공원에 대한 묘사..

히비야 공원에서 감았던 눈을 뜨면 아찔하게 펼쳐지는 빌딩숲.
하얀색 대야 속에서 가득 담긴 물빛을 파랗게 물들이는 파란색 일회용 라이터들.

이런 묘사가 아무한테나 나오는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저 일회용 라이터는..



장편 '퍼레이드'에서는 특별히 묘사에 대해 느끼진 못했는데,
단편인 '열대어'와 '파크 라이프'에서는 아주 잘 느껴지더군요.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퍼레이드'의 가장 큰 특징인 '각기 사람 시점에서 보여지는 같은 사건' 같은 것도
이러한 튼튼한 묘사의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내용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열대어'에 들어있는 단편들,
'파크 라이프' 속의 단편들.
그리고 장편 '퍼레이드'.

이 작품들 모두에서 뭔가 공통적인 그런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해야될까요.

끝없이 이어지는 평범한 일상.
겉으론 아닌 것 같아 보여도 속으로는 외로움을 타는 주인공들.

그리고 열대어의 옮긴이의 말에서처럼
우리가 보내고 있는 평화로운 일상은 정말 깨어지기 쉽다는 것.

그런 느낌..


가볍게 읽을 만한 소설입니다.
카네시로 카즈키의 소설 같이 술술 읽히는 맛은 없지만,
그렇다고 이번 '해변의 카프카'의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읽다가 탁탁 걸리는 것 없이-
그냥 읽는 것 자체를 즐길만 하다고 해야될까요.

그러고보니 전 묘사에 약한 것 같습니다.
'세월의 돌'도 그 묘사가 참 마음에 들어서 좋아했던것 같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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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크로즈

2004/03/21 17:16 2004/03/21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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